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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간 5만명 손길이 이어준 호흡… 온유의 오늘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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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순한원 조회3,508회 댓글0건 작성일19-12-10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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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 온유, 기적의 4000일김온유씨(왼쪽 세 번째)가 지난 6일 서울 강남구 종합병원에서 그가 ‘앰부 천사’로 부르는 앰부 봉사자들과 함께 미소짓고 있다. 이날 앰부 천사로 나선 안지주 최지언 박경덕씨(왼쪽부터). 강민석 선임기자
지난 6일 오후 1시 30분 서울 강남구의 한 종합병원. 김온유(31)씨 병실에서 그의 부모와 앰부 봉사자 2명의 화기애애한 대화 소리가 흘러나왔다.

불의의 의료사고로 21세 때 자가호흡을 잃은 온유씨는 앰부(수동식 인공호흡기)를 통해 생명 유지에 필수인 숨을 24시간 공급받는다. 기계식 인공호흡기를 잠시 써봤지만 병원 사정 등으로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순간도 쉴 수 없는 앰부를 작동하기 위해 2008년부터 ‘릴레이 온유’란 이름으로 온유씨의 호흡을 책임지는 앰부 봉사가 시작됐다. 하루 4교대로 이어지는데 이때는 안지주(33) 박경덕(40)씨가 ‘앰부 천사’로 나섰다. 박씨는 앰부 봉사에 나선 국민일보 취재진에게 앰부 누르는 법과 주의할 점 등을 친절히 안내했다.

“일단 손부터 씻고 오세요. 앰부 누를 땐 양손으로 해야 편합니다. 온유씨가 말할 때는 조금 더 빨리 누르세요.”

세정제로 손을 씻고 물기를 닦아낸 뒤 온유씨 곁으로 가 앰부를 잡았다. 한 생명의 호흡을 감당하는 일, 시작 전부터 부담감이 밀려왔다. ‘실수로 호흡에 지장을 주면 어쩌나’란 염려로 잔뜩 긴장한 채 두 손으로 앰부를 눌렀다. 어깨와 팔에 힘이 들어가 쉽게 피로가 왔다. 앰부를 누르는 간격과 세기도 일정치 못했다. 앰부를 누르다 목과 연결된 밸브가 빠지기도 했다. 그때마다 온유씨는 엄지와 검지를 가볍게 마주치며 호흡 주기를 알려줬다. 손짓에 따라 앰부를 누르니 한결 쉬워졌다. 호흡이 안정되자 온유씨도 이내 가족과 대화하고 휴대전화를 보는 등 일상에 집중했다.

그와 호흡을 맞추는 데 익숙한 봉사자는 한 손으로 앰부를 누르고, 다른 한 손으로 책이나 휴대전화를 보기도 한다. 앰부를 누를 때 나는 바람 소리로도 산소가 제대로 주입되는지 알 수 있어서다. 박씨는 “앰부를 잡고 식사한 적도 있다. 야간에 앰부 봉사를 하는 ‘밤샘조’ 친구는 졸면서도 할 수 있다더라”며 웃었다.

앰부는 온유씨의 건강을 확인하는 잣대도 된다. 목에 가래가 심하게 끼거나 몸 상태가 좋지 않은 날은 앰부로 호흡하는 일도 덩달아 힘들어진다. 이날이 그랬다. 온유씨는 이비인후과 진료를 다녀온 뒤 병실에서도 가래를 뺐다. 진료실 이동과 치료, 병실에서의 처치에도 앰부 천사가 함께했다.

일일 앰부 봉사에 나선 취재기자가 온유씨와 함께한 모습. 강민석 선임기자
릴레이 온유로 맺어진 앰부 천사와는 이제 봉사를 넘어 삶을 나누는 관계가 됐다. 매일 10여명씩 11년간 5만여명이 그와 인연을 맺고 희비를 함께했다. 최근 책 ‘숨 쉬지 못해도 괜찮아’(생명의말씀사)를 출간(국민일보 11월 15일자 34면 보도)한 것도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앰부 천사는 매주 평균 5~6명씩 찾아오는 새로운 봉사자에게 앰부 사용법을 안내하는 일, 지친 온유씨를 격려하는 역할도 한다.

온유씨는 “지금껏 하루하루가 기적이었지만, 몸이 힘들 때면 ‘언제까지 부담이 돼야 하나’란 생각에 빨리 천국에 가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며 “그때마다 앰부 천사들이 ‘살아 있어 줘 고마워’라고 말해줬다. 아무 이유 없이 받는 이 사랑으로 회복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계획도 신뢰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작년 최악의 상황을 각오하고 시도한 허벅지 종양 제거 수술을 계기로 삶의 목표를 새로이 했다. ‘어서 천국에 가고 싶다’고 기도하는 대신 인생의 연수(年數)를 하나님께 맡기고, 주어진 오늘에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병원비를 청구하진 않지만 의료사고 책임 여부를 놓고 이견을 보이는 병원과의 대화도 마무리하려 한다. 온유씨는 “의료사고 인정과 책임 여부, 안정적 호흡을 위한 호흡기계나 치료 제공 문제 등을 병원과 다시 이야기하려 한다”며 “주님께 돌아가는 그 날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갈 수 있도록, 용기와 믿음을 잃지 않도록 함께 기도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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